말씀 NIE] 진정한 배움이란… 나눔·정직 텃밭에 지식나무 키워야 | |
96세에도 불구하고 노인대학에서 졸업장을 받으시는 어르신,배운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즐겁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젊은 대학생들과 향학열의 불꽃을 태우시는 예순이 넘으신 할머니,양쪽 다리를 잃은 50세 중증 장애인으로 법학을 공부하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대학에 합격하신 분,한식과 양식 요리사 자격증을 취득한 초등학생 등 배움의 열정이 활화산처럼 솟구쳐 오르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들에게 나이 장애 환경은 배움의 의지를 꺾을 수 있는 장애물이 아니었다. 배움 그 자체가 힘이었고 희망의 깃발이었다. 이 시간은 배움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보고 삶 속에서 실천해본다. 1계명 다니엘처럼 뜻을 정한다. 2계명 방향 관리가 우선이다. 3계명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준 시간을 계산할 지혜를 구한다. 4계명 체력 관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5계명 기도하지 않으면 밥 먹지 말고 성경을 읽지 않으면 공부하지 않을 것을 생활화한다. 6계명 사소한 것이라도 말씀에 비춰봤을 때 합당하지 않다며 단호히 배격한다. 7계명 삼겹줄은 강하다. 8계명 뜻을 정한 것이 무너졌을 때 좌절하지 말고 다시 시작한다. 9계명 철저하게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공부를 시작한다. 10계명 나는 늘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존재임을 기억한다(김동환의 ‘다니엘 학습법 십계명’ 중에서). 인본주의 교육관이 팽배한 세상에서 신본주의 교육 입장을 견지한 학습방법의 지침서다.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여(단 1:8) 세상적인 유혹으로부터 자신의 의지를 지키면서 사는 삶이 진정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상황에 좌절하지 말고 환경을 지배하시는 주님을 의지하면서 새롭게 배움에 정진하는 모습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옛 선인들은 배움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었을까? 정여창은 “배움이란 밭에 곡식을 심는 것과 같으니 척박한 밭에는 좋은 벼가 무성하지 않고 기름진 땅에는 잡초가 자라기 쉽다. 만약 곡식을 가꿀 적에 심고 북돋우고 호미질하여 잡초를 제거하는 노력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밭이 있어도 어찌 유익하겠는가”라고 말하며 ‘절차탁마의 자세’를 배움의 덕목 중 하나로 손꼽고 있다. 세상의 지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배우지 않으면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공급받고 확대 재생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격의 완성을 위하여 모난 돌을 갈고 닦아서 부드럽고 원만한 돌멩이의 모습을 지닐 때까지 자기를 책려하고 다듬어야 될 것이다. 그러나 배우는 것이 자신의 명예나 단순한 만족감에 목적을 두어서는 안된다. ‘배워서 남주자’는 표어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할 때 배움의 가치는 빛나게 된다. 자기 지향적인 것이 아니라 타인 지향적인 목적성을 가져야만 머리에 담긴 정적인 지식들이 살아서 운동력을 가질 수 있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에서 본다면 배움은 세상과의 소통이다. 잘못된 배움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불행을 주거나 꿈을 좌절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배움에는 정직이라는 안전장치가 항상 있어야 한다. 부정한 방법으로 배우려고 하거나 마치 자신이 연구와 터득을 해서 얻어낸 지식처럼 포장해 내놓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배움은 나눔과 정직의 덕목을 두 날개로 날아야 하며 열정의 연료를 계속해서 공급 받아야 한다(국민일보 ‘배움에 나이가 있나’ 2004년 5월19일자 21면,‘새학기를 맞는 우리의 자세’ 2005년 3월4일자 29면,‘배움의 즐거움’ 2005년 9월3일자 19면 등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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