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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의예술융합영어교육연구소
무대분장

배우는 미련해

by 예술융합영어디렉터 2005. 6. 9.

 

   <분장실>“배우는 미련해”

올 여름처럼 땀을 흘린 적이 있었을까? 그 땀의 주범은 다름 아닌 현재 공연하고 있는 뮤지컬 ‘넌센스’의 탭댄스다.


10주년 기념으로 ‘넌센스’를 새롭게 만드는 과정에서 이번에는 탭댄스를 반드시 보여주자고 끝끝내 우긴 사람은 바로 나였다. 적어도 6개월의 기본 훈련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모든 사람의 걱정과 망설임을 뒤로 하고 그 동안의 공연과는 다른 새로운 노력과 정성으로 가꾸어진 작품을 만들자며 ‘배우에게 불가능은 없다. 우린 할 수 있다’는 오기를 믿음으로 바꾸어 버렸다.


만일 그때 무용을 전공한 레오 수녀 역의 김미혜씨가 “좋아요. 우린 할 수 있어요”라고 맞장구를 치지 않았다면 나도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나를 비롯하여 이제 탭댄스를 시작하기에는 고령(?)의 배우들이 하루에 두 시간씩 탭의 기본을 시작했다. 연습할 때마다 어김없이 튀어나오는 말 “나 바보 아냐?” 제일 못하는 사람도 나였고 “내가 이걸 왜 하자고 했을까?”라고 가장 먼저 절망하고 후회하는 사람도 나였을 것이다.


탭이란 것이 정말 보기와 달리 어렵고 땀을 많이 흘리는 춤이지만 ‘과연 해낼 수 있을 것인가…’ 두려움과 초조에 식은 땀이 온 세포에서 터져나온다. 결국 모든 연습이 끝나는 밤 11시부터 새벽까지 나홀로 외로운 탭을 춘다. 질퍼덕 질퍼덕 여전히 스텝이 엉성한 모습에 절망적이 된다. 그러나 그 식은 땀 사이로 터져나오는 절망 중에도 포기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이유는 다름아닌 ‘약속’이었다.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자신과의 약속, 새로운 것을 보이겠노라고 가슴으로 이미 해버린 관객과의 약속….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든 배우들이 지하 연습실에서 지쳐갈 무렵 생각해보니 겨우 3분을 위해 100시간 이상을 연습한다는 것이 너무 미련하다는 자책에 또 다른 식은 땀이 난다. 아마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나 바보 아냐?”에서 “우리 너무 미련한 거 아냐?” 로 화두가 바뀐 것이. 그때 가장 선배 되시는 박정자 원장 수녀님의 말씀. “그래. 배우는 미련해. 그러니까 죽을 것 같다가도 또 하잖니”


나는 여전히 내가 제일 못한다는 생각에 식은 땀을 흘리며 공연하고 있다. 그래도 일정한 탭소리에 기쁜 가슴으로 뜨거운 환호를 보내는 관객을 볼 때마다 “미련하길 참 잘했다”고 스스로를 추켜본다. 그리고… 이런 엉뚱한 생각도 곁들인다. “미련하기 때문에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배우같은 사람이 많아졌으면…”



/윤석화 배우·월간지 ‘객석’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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