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오르고 사교육비는 크게 줄어
수학 시간에 웬 영어 공부? 수학교사 조미경(28)씨는 “수학의 논리는 영어로 설명해야 더 쉽고 명확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쓰는 수학책을 분석한 자료를 교재로 씁니다. 문제풀이를 명쾌한 영어로 설명하는 게 재미있는지 학생들이 서로 발표하려고 난리예요.”
명지고는 새 학기 들어 영어는 물론 수학·사회·과학도 영어로 가르치는 ‘교육실험’을 시작했다. 영재학교나 특목고가 아닌 일반 고교에서 영어 이외의 과목을 영어로 가르치는 실험은 명지고가 국내 처음이다. 1학년 두 개 반(70명)은 ‘영어·수학·사회·과학’ 네 과목을 영어로 강의하는 수업과 한국어로 하는 수업을 번갈아 진행한다. 또 1·2학년 11개 반(385명)에선 개념 설명과 일부 과제만을 영어로 가르친다.
이 같은 영어강의는 대학에서도 ‘저항’이 만만치 않아 일부 대학만이 도입하고 있고, 극소수의 사립 초·중·고교에서만 시도하고 있다. 명지고의 파격적인 실험이 주목을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박성수(朴性洙·전 전남대 총장) 교장은, 그러나 소신이 확고했다. “영어를 영문과 출신들이 만든 교과서로 배우다 보니 문학적 표현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어요. 일상적 학습을 영어로 할 수 있어야 진짜 영어라 할 수 있죠.”
명지고는 지난해부터 주요 과목에 영어 강의, 심화학습을 부분 도입하고 올 2월 신입생 입학을 앞두고 학부모 설명회를 열어 희망자를 대상으로 영어반을 따로 꾸렸다. 대상은 영어를 ‘이미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할 각오가 돼 있는’ 학생들이 모이도록 했다. 1학년 김영지(16)양은 “수업을 이해하기 위해 기본 용어를 꼭 예습하고 질문할 내용을 미리 문장 통째로 연습해 온다”며 “영어 학원에서 몇 년 한 것보다 실력이 확 느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어 강의에 투입된 교사는 4명이다. 이 중에 외국인은커녕 ‘해외파’도 없다. 모두 대학시절 전공 원서를 읽고 몇 개월 어학연수를 한 정도의 경력이지만 영어 수업은 매끄럽다. 사회과 최유리(29) 교사는 “교실에서 쓰는 표현은 제한돼 있어요. 예를 들면 계몽사상(啓蒙思想)을 ‘enlightment ideas’로 가르치는 게 더 편하고 효과적일 때가 많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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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수업 때는 보충학습과 심화문제 풀이, 학생들이 주도하는 과제해결·토론 수업이 이어진다. ‘편한 길’에서 멀어진 교사들은 “학생들 눈빛이 달라지는 데 힘들어도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학교측은 작년 부분적으로 도입한 이 영어 강의·심화학습 체제가 모든 과목 학습에 큰 효과를 낸 것으로 분석한다. 작년 1학년의 경우 특별수업반의 정기고사 주요 과목 평균이 일반반보다 10점 가량 높았고 과외·학원 의존율도 학기 초보다 15%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성적우수자 반이 아니었는데도 격차가 점차 벌어졌다는 것이다. 명지고는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이 특별한 실험을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키워드▶고전논리학에서 ‘A이면 B이다’라는 ‘명제(命題·statement)’의 가정과 결론을 뒤바꾼 ‘B이면 A이다’는 역(逆·converse), 가정과 결론을 각각 부정한 ‘A가 아니면 B가 아니다’는 이(裏·obverse), 가정과 결론을 각각 부정해 뒤바꾼 ‘B가 아니면 A가 아니다’는 대우(對偶·contraposition)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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