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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석·김광림의 연출 기법 연구 02
2. 3. 서사극적 연출
김광림 작.연출의 [그여자 이순례]는 거대한 사회체계에 희생되어 개체의 사고와 행동이 거세당한 현대인의 자아찾기를 시도하는 작품이다. 보험회사에 거액의 보험금 지불 사건이 발생하자 조사부 직원들이 지불액을 최소화하려는 사건 조작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직원이 자아를 찾게 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경량급의 사랑이야기이다. 한국전쟁동안 하룻밤의 인연이 평생의 굴레가 된 사랑과, 같은 사무실의 기혼남과 미혼녀의 비정상적 사랑이야기가 표면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호기심 자극과 욕망의 대리충족을 의도하는 연극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연극은 통속적이지 않고 비정상적 사랑이지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연출의 면밀한 계산과 연기의 조화가 통속성을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개인문제, 가정문제, 사회문제가 극에 녹아들어 필연성과 설득력을 확보하면서 해결점을 찾아간다. 해결점이 연극에서 완전히 제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잊었던 것, 있어야 했는데 없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시켜주는 연극이다. 20세기 문명사회에서 인간의 위상탐구, 실존의 모습, 진실의 존재방식 찾기가 의도되고 있다. 역으로, 현대 사회의 비인간성, 허위성, 몰가치성을 엄중히 지적 비판하는 연극이다. 표현양식은 서사극적 기법에 의존한다. 현대 사회의 병폐와 비리 부정을 비판하는 최고의 연극양식으로 인식되어 온 서사극적 기법이 쓰이고 있는 것이다.
거액의 보험을 든 주인공 김억만이 갑자기 사망하자 보험회사 조사부는 이 죽음을 의심한다. 보험금을 지불받을 사람이 즉은 김억만이 아니라 이순례의 남편 박영만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보험금을 노린 타살이나 자살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정해진 결론을 향해 죽음의 발단을 추정, 조작한다. 그렇지만 자살이 확정적이다. 직원들이 직접 배우가 되어 보험금을 노린 희대의 자살극을 꾸며 나간다. 화사부장이 박영만역을 맡고 김대리는 김억만역을 미스리는 이순례역을 각각
맡아 회사직원의 역할과 극중극의 역할이 수시로 호환되면서 극은 진행 된다.
보험금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한국 전쟁중 북한군 군관 김억만이 쫓기던 중 외딴 집에서 이순례를 만나 같이 하룻밤을 보낸다. 총살 위험에 처한 김억만을 살려주고 이순례는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포로가 됐던 김억만은 이순례를 찾기 위해 석방때 남쪽을 택하게 되며 외딴집 하룻밤의 기억을 더듬으며 보낸 30년후 어느 날 둘은 우연히 길에서 만난다. 김억만은 이순례에게 용서를 빌고 잘못을 꼭 갚겠다고 한다. 용서의 댓가로 거액의 보험통장이 준비되고 있었다. 이순례의 남편 박영만은 두 사람의 밀화를 목격하고 이야기를 엿듣는다. 이순례는 괴로워하다가 우여찮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조문온 김억만은 통장을 내놓는다. 그 후 김억만이 죽고 박영만이 보험금을 받게 된 것이다.
극중극의 과거와 현재의 회사임무가 뒤바뀌는 시간의 중층구조에 과거의 사랑과 현재(김대리와 미스리)의 사랑이 복합 중층구조로 맞물리고 있다. 극중극이 완성되고 시연만을 남긴 채 김대리는 회의에 빠진다. 성공적으로 연극을 완성하였으니 판결은 회사쪽에 유리할 것이고 승진도 보장된다. 그러나 김대리는 승리감을 느낄 수 없다. 이순례와 김억만의 사랑을 물신화시킨 자신들의 과학적 논리가 부당함을 느낀 것이다. 10억의 보험금으론 보상 될수 없는 두 사람의 진실된 마음을 확인 한 것이며 10억의 거액보다 훨씬 값진 진실과 사랑이 인간의 마음에서 바닥을 드러내고 있음을 본 것이다. 자살 증명극이 끝나면서 김대리는 허무와 진실 두 가지를 함께 본 것이다.
무대는 단순하다. 일반 사무실의 배치와 같다. 우측에 부장 책상이 좌측에 직원들 책상이 있고 뒷편 창문 쪽으로 블라인드가 좌.우.가운데에 늘어져 있으며 가운데 것은 좌.우것보다 뒤쪽으로 장차되 있어 사이를 통로로 이용한다. 가운데 블라인드에는 환등기로 장면전환의 자막을 투사하고 좌.우 블라인드는 새로운 공간 설정을 위해
사용된다. 회사의 미스리와 집에 있는 김대리가 전화할 때, 김억만과 이순례의 다방 밀회 장면을 박영만이 엿볼 때 공간구획으로 블라인드가 사용되며 김대리가 진실과 허무를 함께 보았을 때 뒷편으로 걸어가는 걸인을 진실과 허무의 상징으로 처리할 때에도 사용된다. 연출의 5대 요소에서 구성과 시각화의 문제가 고려된 부분이다.
[그여자 이순례]에서 연출은 배우의 연기에 중점을 두었다. 각 배역이 갖고 있는 성격의 질량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출세욕과 목적의식의 과잉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최부장 역과 극중극에서 박영만역을 맡은 배우(우상전)는 특유의 말버릇과 어조로 희극적 효과와 긴장의 완급을 소화했으며 미스터 하 역의 기주봉은 치밀한 계산에 의한 순간동작과 무대활용이 연기의 전체적 균형을 맞추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신체적 조건을 이용한 동선이 상당한 집중력을 발휘했다. 연극의 중반이후에는 기주봉의 동작 하나하나에 관객의 웃음이 동반되었다. 동작과 팬터마임의 극화를 능숙하게 유도한 연출자의 의도에서 부산된 것으로 보인다.
판단의 정보제공을 위한 극중극, 장면전환을 알리는 환등기 투사, 관객의 판단을 유도하는 해설자 등장, 객석으로부터의 배우등장, 동시무대사용, 관객을 심판관으로 가정하는 연극진행, 1인다역의 역할 바꾸기, 사실의 추적과정 등은 서사극적 연출의 대표적인 표현기법들이다. 이 기법은 극에의 몰입을 방지해 연극의 변화를 보면서 자신의 관념도 변화시키게 한다. 언급되었듯이 관객은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고 관념의 변화도 일으켰다. 서사극은 매우 정치적이다. 그러나 이 연극에 정치적 요소는 많지 않다. 잘못된 사회와 인간의 관념 개혁을 드러나지 않게 시도하기 때문이다. 드러나지 않는다고 전언의 가치가 감소되는 것은 아니다.
80년대 말 서사극의 대부분은 사회, 정치, 경제의 부정과 모순에 대해 발언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연극은 시간과 감정의 복합 중층구조와 서사극에 맞물린 정통
극 감정구조를 이용해 존재론적인 인간모습을 형상화 하고 있다. 이점은 서사극의 정치성 후퇴라 생각하며 표현을 위한 기법의 다음적 활용이라 생각 한다. 또 상반된 두 구조의 화해는 시사적(示唆的)인 면이 있다.
2. 4. 포스트모던극적 연출
가치폭발, 균형과 절제의 상실, 혁신의 절망, 이성의 거부, 개방, 통일, 광고의 폭주, 세기말적 징후들의 꿈틀거림, 후기산업사회, 대중의 홍수, 총체성의 상실 등 20세기의 끝을 규정짓는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엄청난 두께로 누적된 문화의 총량, 고도의 산업문명, 포화상태의 인구, 대(大)의 초(超)의 범람 등은 인간의 수사력마저 당혹하게 만들고 있다. 만수위의 정신적 물질적 지구총량이 이전의 어느 세기말보다 전면적인 충격으로 인류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삶의 유기적 내연관계는 찾아지지 않고 무감동한 파편들만이 존재하여 의미의 사슬들이 무가치 속에서 해체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 확대될 것이 분명하다. 확대는 긍정보다 부정적인 의미를 갖게 되지만 이를 바라보는 인간의 상상작용이 방관적 태도만을 취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의미의 사슬들은 다시 묶여지고 제기능을 발휘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고전에 대한기억, 현재의 합리적 긍정적 수용, 과거를 변형한 현재적 재창조 등이 새로운 의미연관 만들기에 받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가 포스트모던의 경향을 보인다. 5∼60년대부터 서구에서 나타난 포스트모더니즘이 어떻게 수용되어 표현되고 있는지 논의 할만 하다. 이 흐름이 앞으로 연극계에서 상당한 비중으로 나타날 것도 분명하다.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는 바다 속에 있어야할 용왕이 20세기말 육지 위를 활보하고 감옥에 갇히기도 한다. 현대판 심청전이 되는 것이다. 심청이라는 어린 여자 주인공과 인당수만을 빌려온 매우 돌출적인 연극이다. 한국 고전을 현대적으로 변형한 예를 보면, 해학적 요소와 판소리적 요소를 이용한 것이 많았으나 이 연극에서는 동시대 사람들의 현대적 감수성에 의지한 채 패로디로 흥미유발을 시도하는 포스트모던의 연출기법을 사용하고 있는 극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심청이 보여주는 현대 사회의
만화경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심청이도 복잡 다단한 현대 사회의 한 파편에 불과하므로 연극을 구성하는 소(素)집합이라고 해석함이 옳겠다.
무대는 매우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관객을 맞는다. 특정 회사명이 그대로 노출된 크고 작은 박스들이 불규칙적으로 뒷무대에 버티고 있고 타이어도 있으며 그물침대가 조명기기 사이로 연결되어 있으며 얼굴만이 쇠창살 사이로 드러나도록한 박스도 있다. 무대 뒷편의 가운데는 좁은 통로가 무대를 따라 나있고 무대 앞쪽에는 핏물이 가득한 큰 통이 있으며 무대 좌우편은 약간 높게 장치되어 있다. 우측에는 컴퓨터가 있으며 위에는 연꽃이 매달려 있으며 군데 군데 인형들이 미신처럼 걸려있다. 핏물 가득한 통위에는 장난감 앰블란스가 놓여있다. 구동장치가 없는 장난감 앰블란스이지만 차주가 오태석인만큼 어떻게 해서라도 움직여 질것이라는 호기심을 갖게 한다. 그 외에 장면에 따라 무대 앞쪽에서 그물이 올라가고 무대 뒷쪽에서 문자판이 내려 오기도 한다.
오태석의 연출은 익숙한 연극기법 범주에서 벗어나 있으며 때로는 철학적이기도 하다. 이 연극은 운명의 우선 멈춤으로부터 시작된다. 용궁에서 연꽃을 타고 올라 황후가 되어야할 심청은 자신의 운명변화를 거부한다. 고향으로 가고 싶어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세상 구경을 하기로 한다. 용왕과 함께 남장을 한 심청은 현대 서울에 등장한다. 둘은 혼란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로 들어간 것이다. 스타킹, 후라이팬을 파는 가판원, 풀빵장수등이 등장하여 상품판매에 열을 올리고 가운데에서는 여자가 자극적인 춤을 추며 작은 손수레를 밀며 장사하는 불구자도 지나 간다. 인간사 만화경이고 혼란한 현대의 모습이다. 이 혼란함속에 넋을 잃고 있던 두 사람은 소매치기를 당할뻔하고 와중에 후라이팬 장수 윤세명은 소매치기들한테 발뒤꿈치를 난자당한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진 윤세명은 작은 수레에 잡화를 싣고 기어다니며 물건을 팔게된다. 그는 시장에서 만난 인수의 유혹에 넘어가 화염병제조에 참여하게 된다.
심청은 윤세명의 파괴적 사업을 방관할 수없어 용왕의 지시대로 화염병제조자인 비닐하우스에 방화한다. 다리의 움직임이 불편한 윤세명은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고 용왕은 방화교사죄로 수감된다. '나다니지 못할'정도의 흉직한 화상을 입은 윤세명은 심청에게 자신의 과거를 담담히 털어 놓는다. 땅 팔아 산 소 다섯마리가 서른 세마리로 늘어 나면서 행복했던 그의 기억은 홍수에 소와 함께 떠내려 갔고 그는 행복을 되찾고자 재기의 도약대로 시장의 가판원이 된 이야기를 하나 둘 풀어 놓는다. 다리에 이어 얼굴마저 불구가 된 윤세명은 백가면을 쓰고 인간타켓이 된다. 사람들이 던지는 공의 표적이 된 것이다. 공을 맞으면 가슴으로 피를 뿜어내는 숨쉬는 이동표적이 되어 서른 세 마리의 환원에 의지한 채 처절한 돈벌이를 한다.
현대의 강렬한 충격과 무모성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더 격앙된 놀이를 요구하여 인간타켓의 목에 증오하는 사람의 이름을 개패처럼 걸어 증오의 감정을 해소하고자 한다. 윤세명은 이를 거부 했지만 어쩔수 없이 따라 가게된다. 어느 날 직장상사의 배신행위에 흥분한 손님이 백가면을 직장상사로 착각하여 살의마저 나타내자 보조원이 이를 진정시키려다 손님에게 살해 당한다. 실의에 빠진 윤세명은 인간타켓 놀이에 회의를 느끼지만 소의 환원에 대한 집착 때문에 자신을 다시 격정적으로 몰아 간다. 윤세명의 이상행동을 눈치 챈 심청과 용왕은 그를 새우잡이 배로 끌고 간다. 도착한 곳은 어느 항구이다. 용왕이 감옥에서 만난 포주와 동업하기로 한곳을 찾아 간 것이다. 인신매매 당한 여자들이 상품으로 팔리기를 기다리는 곳이다.
앨범에 들어있는 사진을 보고 여자를 부르면 여자는 큰 상자 위로 나타나 야릇한 몸짓으로 인사한다. 그러다 심청이 갑자기 사라진다. 용왕은 심청을 찾기위해 여자상자를 전부 싣고 섬지역을 돌며 매춘을 시작한다. 용왕은 윤세명의 소매입자금 확보를 위해 '돈 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자팔기에 회의를 느낀 윤세명이 포주를 살해 한다.
이 때 경비정이 나타나 배 강제 탈취와 여자유괴죄로 체포하겠다. 하자 TV 기자회견을 요청하여 여자들의 빚을 갚아줄 독지가를 찾는다. 많은 빚과 기구한 사연을 가진 여자들이 소개되나 원하는 독지가는 나타나지 않는다. 동정유발을 위해 심청이 물에 뛰어 들고 다른 여자들도 뛰어 든다. 그래도 독지가는 나타나지 않는다.
윤세명의 소에 대한 집착은 숭고하기 까지 하다. 가판원, 소매치기, 무희, 매춘부 모두는 삶의 한 끝을 잡고 놓지 않으려는 가련한 인간상이다. 이들은 세상의 혼란스러움과 불법적 상황에 비판의식이 없다. 오히려 그러한 세상을 이용한다. 현대 문명속에서 살아가기 급급할 뿐이지 개혁의지는 물론이고 꿈마저 상실한 시대를 대하는 연극의 태도도 나타난다.
복잡 다양한 사회처럼 연극도 그 표현이 복잡 다양하다. 후기자본주의 사회가 보여주는 일련의 징후들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번잡한 무대, 컴퓨터 사용, 궤도를 이용한 앰블란스의 이동, 회사명이 노출된 상자 등 모두 작품속에 패로디화 되고 있다. 심청의 서울 등장, 움직이는 인간타켓, 용왕의 감옥행, 인신매매단의 TV기자회견 등은 모두 인간의 패로디화이며 관객동원을 위한 흥미유발이다. 즉 대중주의를 지향하는 것이다. 대중주의는 상업성과 통한다. 상업성은 예술로서의 연극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이 예술화되고 예술이 상품화되는 현실에 적응해 가는 것이다. 현실 순응적 연극이 된 것이다. 비판적 거리가 다분히 소멸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실은 부정하다 그러나 살아야 한다"는 어조를 구축하는 연극이다. 관객들은 연극관람후 부패한 현실에 대한 분노를 느끼기보다 다양한 표현방식, 예상을 뛰어넘는 무대움직임을 생각하며 극장을 나서게 된다.
정서의 퇴조, 패로디화, 현체제에의 순응, 대중주의의 우세, 상업화되는 연극, 표현방법의 확대 시도, 행복의 만연, 총체성의 거부 등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일반이다. 오태석은 작품의도를 심청의 순수한 눈을 통해
세기말적 징후를 느끼고 그 속의 인간정체를 찾고자 한다고 했는데 이점이 포스트모던극적 연출방법인 것이다.
[심청이는 왜 인당수에 두 번 몸을 던졌는가] 의 무대는 매우 장식적이다. 화려함의 장식이 아니라 표현을 위한 소품들의 복잡함이다. 너저분한 소품들 모두 표현작용을 위해 결합된다. 관객의 수보다 많을 자잘한 소품들은 극장을 폐물창고처럼 만들어 버린다. 흉물같은 후기자본주의의 한 가운데에서 연극이 진행되고 있음을 의도한 것이다. 극장입구부터 포스트모던의 색채를 갖도록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오태석이 보여주는 연극적 상상력은 한국연극계에 늘 문제적이었고 정공법이 아닌 반짝이는 연극감각으로 관객의 허기진 감수성을 넉넉하게 해주고 있다. 그러나 포스트모던극적 연출은 그의 문화에 대한 앞선 감각만을 증명하는데 그칠 수 있다. 연극이 생경한 박래품같이 되버릴 수 있고 비판적 거리의 감소는 시대의 퇴폐를 방조하는 것으로 경계되어야 마땅하다. 포스트모던은 앞선 문화의 흐름일 뿐 관객의 공허한 감수성을 채워주기에는 부족함이 없지 않은 것 같다.
3. 1 결 론
연출을 유형화하여 고찰하는 일이 쉽지 않다. 하지만 연출의 현재를 파악하고 조감함으로써 연출의 미래를 심화·확대하는 작업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를 유형화하는 일은 의의가 있다. 90년대 이후에 공연된 작품으로 유형의 특성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을 대상으로 첫째 제의극적 연출, 둘째 사실주의극적 연출, 셋째 서사극적 연출, 넷째 포스트모던극적 연출 등의 네가지로 나누어 고찰했다.
먼저 제의극적 연출에서는 '99년 아룽구지판 [부자유친]'을 고찰했다. [부자유친]에서 발견되는 제의극적 연출은 한국의 제의적 특성인 원형적 요소들과 아르또의 제의극적 연출이론이 맞물려 있다. 역사적 사실이지만 이미 춘향전같은 설화가 되어버린 사도세자이야기, 전통윤리덕목, 전통의상과 전통음악, 춤, 악기 등의 원형적 요소들은 한국 제의의 특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아르또가 제시하는 제의적 연출론과도 관련되는 것이다. 이러한 제의극적 연출은 고대제의에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고 새롭게 자신을 발견하도록 하는 특성과 관련되어 관객에게 현시점의 나를 통찰하게 하는 의식을 제공하기도 한다.
사실주의극적 연출에서는 김광림 연출의「북어 대가리]를 살폈다. 창고지기로 상반된 성격의 두 사람 '자앙'과 '기임'의 각기 다른 삶의 방식을 보여 주는 작품이었다. 기임은 창고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자앙은 현실에 만족한다. 창고의 안이나 바깥이나 모두 보이이지 않는 지배논리가 있다. 상반된 인물들의 상반된 가치관을 침잠된 분위기, 희극적 분위기, 심각한 분위기가 서로 잘 어울리게 표현하려는 세심한 연출이 발견되는 작품 이었다. 그리고 시각화의 문제와 동작 팬터마임의 극화가 비교적 동시에 해결되고 있었다.
서사극적 연출의 작품으로는 김광림 연출의 [그여자 이순례]를 살폈다. 거대한 사회체계에 희생되어 개체의 사고와 행동이 거세당한 현대인의 자아찾기를 시도하는 작품이다. 서사극적인 여러 기법들
을 다양하게 사용하면서 주제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 작품에서 연출은 배우의 연기에 중점을 두었다. 동작과 팬터마임의 극화를 능숙하게 유도한 연출자의 의도가 돋보였다.
포스트모던극적 연출에서는 오태석의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를 살폈다.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를 포스트모던의 기법으로 담아내었다. 복잡 다양한 사회처럼 연극도 그 표현이 복잡 다양하였다. 후기자본주의 사회가 보여주는 일련의 징후들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다. 심청의 순수한 눈을 통해 세기말적 징후를 느끼고 그 속의 인간정체를 찾고자 한다고 했는데 이점이 포스트모던극적 연출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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