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자기 발견과 표현능력의 향상에 많은 도움을 주어 전인적 성장을 돕는다.
예술치유, 시대를 위로하는 신의 손길
지난 세기 동안 숱한 전쟁과 공해로 이 지구 생태계는 엄청나게 파괴되었고, 또 그 과정에서 인간의 정신은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졌기에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겐 치유가 필요하다고 본다. 비단 인간과 자연뿐 아니라, 이 모든 것을 창조한 신神마저도 상처 입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된다. 하지만 신은 치유의 한 도구로 표현예술을 선사했으니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지혜를 넘어선 신의 은총이라 하겠다.
오늘날 가장 보편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예술치유의 분야는 미술, 춤, 음악, 연극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 외에 시, 명상, 소리, 걷기, 쓰기, 이야기하기, 놀이, 인형극 등도 잘 쓰이고 있다. 이들은 각각 미술치유, 음악치유, 연극치유 등으로 불리는데,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무용과를 졸업했다고 해서 춤 치유사Dance Therapist가 되는 것은 아니며, 음악을 전공했다고 음악 치유사Music Therapist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치유란 전적으로 다른 분야이기 때문에 별도로 훈련을 받아야 한다.
내가 예술치유를 하나씩 만나게 된 과정을 말하면, 그것 자체가 일종의 신비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성격 또한 범상치 않았다. 우선 춤을 만나게 된 것이 그러하다.
춤이란 몸의 언어이다. 기독교에서는 ‘방언’이라는 독특한 언어를 신이 내린 은사 중에 하나로 보는데, 내게는 춤이 마치 신에 의해 부여된 ‘몸의 방언’처럼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춤을 출 줄 모르는 사람에게 춤이란 외국어와도 같이 낯선 것이다. 나이 오십이 되도록 춤의 세계를 알지 못했던 나다. 그런데 지금은 춤이 가장 익숙한 몸의 언어가 되어 나의 내면을 표현하는, 또 남을 치유로 이끄는 도구로 삼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예수의 첫 제자들이 성령과 함께 방언의 은사를 동시에 받았을 때, 여러 나라에서 몰려든 군중이 제자들의 이질적인 방언을 각자 자기의 언어로 알아듣고 신기하여 스스로들 놀라했다. 나의 춤, 몸으로 하는 방언도 그러하다. 나는 세계를 여행하며 어느 나라에 가든 춤으로 사람들을 만났는데, 나와 함께 춤을 추던 사람들은 각자의 삶과 경험을 토대로 나의 춤을 이해하고 또 감동했다.
‘지금 여기’에 나타나는 춤
수년 전, 아르헨티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세계선교대회가 열렸을 때의 일이다. 폐막식 행사에 춤을 춰달라는 요청이 왔다. 나는 배경음악으로 몰몬 태버나클이 부른 아름답고 웅장한 주기도 음악을 택했다.
그런데 많은 성공회 예배당의 건축 양식이 그렇듯 내가 춤을 출 제단 역시 지극히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 교회의 강단은 신부만이 설 수 있는 곳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마침내 내가 춤출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파란 한복을 입고 주기도 음악에 맞춰 몸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하늘에서 뜻이 이루어진 것과 같이” 대목에서 후르르 치마폭을 날리며 사제만이 서서 설교하는 높은 강단 위로 올라가 거기서 춤을 추고, 또 내려오면서 추었다. 거기 올라가 설교하는 것 이상으로 내 영혼이 하늘의 뜻에 가까워짐을 느꼈다. 설교자로 참여한 해방 신학자 보니노Jose Bonino 교수는 물론, 관중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란 표정이었다. 갑자기 많은 카메라들이 나타나 나를 찍기 시작했다. 관중은 흥미롭게 두 가지 반응을 보였는데 일군의 남성들이 “거기가 어디라고 감히 여자가 나서서 춤을 추는가?” 하며 괘씸하게 여긴 반면, 여성들은 하나같이 “그 자리가 바로 김영young Kim 목사의 자리임을 몰랐는가?” 하며 신나게 반문했다.
나는 담대히 예수께서 가르치신 기도를 몸으로 드렸을 뿐이다. 춤이란 우리 내적 자유를 경험하게 하는 놀라운 힘을 지니고 있다. 또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몸을 가지고 있듯이 몸의 언어인 춤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나’만이 출 수 있는 ‘고유한 춤’ 언어를 갖게 된다. 이를 치유 춤으로 발전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이 바로 메리 화잇하우스Mary Starks Whitehouse이다. 그는 이를 ‘고유 동작Authentic Movement’이라 이름지었는데, 여기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깔려 있다. 그이에 따르면 한 영혼의 무한한 염원과 벗어날 수 없는 한계 사이에서 표현되는 모든 동작은 필연적이며, 아울러 고유함을 지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동작은 배워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순간에 나타난다. 이는 순수한 자기가 되어 가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는 이와 같이 춤을 추는 과정은 마치 도를 닦는 것과 같다고 본다. 순수한 자기가 된다는 것은 몸과 마음과 영혼이 하나가 되는 과정이요, 아울러 성화聖化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소리로 이어진 치유의 길
순수한 자아의 표현이라는 점에서는 ‘소리’도 춤과 마찬가지다.
내가 소리치유를 만난 것은 지난해 내 나이 육십, 환갑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그러하듯 나는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갈구하면서 ‘소리’를 찾고 있음을 점점 명확히 느끼기 시작했다. 하루는 친구 부부와 함께 자동차 여행을 하던 중 나도 모르게 신바람이 나서 이런 말을 하고 말았다. “만약 하느님께서 너의 60번째 생일 선물로 무엇을 줄까 하고 물으신다면 나는 서슴치 않고 ‘소리요!’라고 대답하겠어요.”
이렇게 생일선물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생일을 고대했는데, 생일 6일 전인 9월 11일에 그 끔찍한 뉴욕 무역센터 테러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딸이 기획한 나의 회갑연을 취소하였다. 경악 속에 애도의 시간이 이어진 며칠 후, 뉴욕 오픈센터에서 매일 오후 한 시에 각종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안내서가 나왔다. 나는 소리치유를 하는 날 그곳을 찾았다. 춤이 온몸에 꽉 차 올랐을 때 비로소 몸 밖으로 터져 나왔던 것처럼, 나는 내 안에 꽉 찬 소리들을 느꼈다.
뉴욕 오픈센터에 마련된 방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둥그렇게 둘러앉아 있었다. 소리치유의 진행 자는 셔나 캐롤Shawna Carol로, 가수이자 작곡가며 ‘영의 노래Spirit Song’를 창안한 사람이라 했다. 영의 노래는 가사 없이 순간적으로 흘러나오는 음을 따라 부르는 노래이다. 나는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소리임을 알았다.
돌아가며 자기 소개를 하던 중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 소리를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 몸 가득히 소리가 차 있음을 느낍니다. 나의 어머니가 못다 부르고 가신 소리, 나 자신의 소리, 그리고 내 딸의 소리까지요.” 그 시간이 끝나자 셔나가 내게 다가와 노래를 해 보겠냐고 속삭였다. 나는 바로 이 순간 하나님께서 내가 기다렸던 선물을 주심을 알아차리고 노래를 하겠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주저할 수 없는 운명적 순간으로 느껴졌다. 그녀가 먼저 한 음을 내 주었고, 그때 나는 이제 막 항해를 시작하는 배처럼 내 속에서 잠겨 있던 소리들이 천천히 밀려나오는 것을 느꼈다. 육십 생에 처음으로 내가 내 영혼의 노래를 부르고 또 듣는 순간이었다. 내가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여 이렇게 ‘나의 노래’를 부르다니! 나는 충분하다고 느껴질 때까지 진지하게 노래를 불렀다. 왠지 그렇게 해야될 것 같았다. 신기하고 감개무량할 뿐이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나는 셔나의 초청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아 스피릿 송 교사 훈련 과정에 참가하게 되었다. 거기서 배우면서 동시에 가르치는 경험까지 하게되었다. 그 시간이 좋았던지 함께 했던 미국친구들이 훗날 모금을 하여 또 나를 다시 초대한 일도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놀랍게도, 갈구하던 소리를 만났을 뿐만 아니라 이제 가르칠 수 있는 자격까지 얻게 되었다.
이처럼 하늘이 하시는 일은 나의 상상을 넘어섰다. 이제는 내가 체득한 소리를 통해서 아픈 이들의 내면의 소리, 영혼의 소리를 불러 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신께서 준다는 것이 무슨 뜻이겠는가. 우리 안에 이미 가진 것들을 꺼낼 수 있는 은총의 기회를 만들어 주신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나의 춤이 그랬고, 나의 소리가 그랬고, 나의 치유 능력이 그랬으니 이 진실의 토대 위에 나의 예술치유가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한을 넘어서 진정한 자유로
지금까지 치유를 매개로 많은 사람, 특히 한국여성을 만나오면서 내가 느낀 것은 우리 민족에게 한恨이라는 특별한 아픔이 내재해 있다는 점이다. 이 한이란 단어는 다른 나라말로는 번역이 불가능한 우리 민족만의 고유한 아픔이기도 하다.
한은 억압(oppression)과 억제(repression)에서 비롯된다. 문화적인, 혹은 사회적인 억압 속에서 자기 표현을 억제하며 고통을 쌓아갈 때 그것이 뭉치고 매듭지어져 한이 되는 것이다. 한은 여러 가지 양상으로 표출되는데, 소극적인 사람의 경우 그것은 절망에 빠지고 자포자기하는 것으로 표현되고, 혹은 분노나 화로 거칠게 표현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양상이든 그것이 현대의학 보다는 예술치유가 더욱 효과적인 것은 나의 치유작업에서 증명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예술치유가 기여하는 것은 자기 안의 진정한 자아를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일, 그리고 그 고귀한 자유(치유)의 경험으로 이웃의 아픔에 동참하며 그들이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 예술치유의 길道이라 하겠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남아공(South Africa)의 대통령이었던 넬슨 만델라가 한 말에 공감을 하게 된다. 그는 백인들이 자기 민족을 정치적 사슬로 억압하는 것을 보고 이런 말을 하였다. “자유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자기를 묶는 사슬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아니라 남의 자유도 존중하고 향상시키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최근에 나는 아프리카 여행 중에 요한네스 버그에 들렸을 때 그들이 백인들의 인종차별에 맞서 싸운 역사적 현장을 보았다. 그리고 그 값진 역사를 간직하고 진열해 놓은 ‘인종차별 박물관Apartheid Museum’을 보고 마음에 뜨거운 감동을 느꼈다. 그 박물관 정문 입구 벽에, 만델라가 한 그 말이 크게 새겨져 있었다. 그 말이 나오기까지, 그들이 억압을 당하면서 느꼈을 고통이 나에게도 가슴 저리게 다가옴을 느꼈다.
순환하고 전파되는 치유의 힘
성서 출애굽기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경험한 해방의 역사가 펼쳐지는데, 그것을 보는 이들은 너나할것없이 감동을 느끼며 해방감을 경험하게 된다. 이처럼 한 개인의, 나아가 어느 민족의 집단적인 치유 경험은 역사 속에서 재생산된다. 마찬가지로 예술치유의 본질도 순환에 있다. 우리가 한을 품고 사는 동안은 자기 짐이 무거워 남을 치유하기 어렵지만, 그 한을 풀고 넘어설 때 치유자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예술치유가 기여하는 것은 자기 안의 진정한 자아를 찾게 해준다는 점이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치유란 단순한 환자의 치료나 한풀이에 국한될 수 없다. 건강한 삶이란 마음의 매듭을 풀어 영혼에 자유를 줄 때 비로소 가능하며, 그것의 첫 걸음은 자기 표현에서 시작되는 까닭이다. 그러니 결국 내가 걸어온 길은 타인의 매듭을 풀어줌으로써 곧 나의 영혼을 자유롭게 한, 곧 내가 치유되는 과정이었다고 본다. 앞으로도 이 길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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