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 생겨난 대표적인 디자인중의 하나가 바로 사인디자인이 아닌가 한다. 모르는 거리를 걷다가 어떤 곳을 찾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구입하고자 하는 순간 나에게 절대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고 절실하게 필요로 한 것이 바로 사인들이기 때문이다. 처음 뉴욕에 와서 가장 놀란 점 중의 하나가 어떤 곳을 찾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것이었다. 한국 번화가의 건물을 거의 가려 버릴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화려한 색의 글자가 커다란 친절한(?) 사인시스템들에 익숙하던 나는 너무나 깨끗한, 약간은 텅 빈 듯한 작은 사인 시스템들이 매우 놀라웠고, 사람들이 과연 원하는 것들을 제대로 찾고, 상점들은 제대로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광고하고 있는가에 대한 호기심마저 일었다.
그것은 길거리에 있는 상점의 사인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뉴요커들은 지하철의 사인들도 이전역과 이후역을 보여주지 않는 한국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불편함과 함께 살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낯설었던 나는 이러한 뉴욕의 사인 시스템의 구조가 너무나 불편하였지만, 또 사람은 환경에 아주 쉽게 익숙해지는 존재라 이제는 그것이 그냥 이 도시의 일부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인디자인들을 그 나라 사람들의 특성을 대변하는 ‘거리의 대변인’ 같다는 생각도 든다. ‘빠른 것’을 좋아하는 한국사람들의 특성은 한꺼번에 모든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도록 크고, 화려한 사인 시스템을 발전시켰고, ‘느린 것’을 나쁘거나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뉴요커들은 작고, 심지어는 사인이 없는 것에도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이번 글은 뉴욕거리를 걷다가 평소에 독특하거나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간판들을 이미지와의 조합, 폰트끼리의 조합, 혹은 다양한 재질과의 조합 등을 기준으로 분류한 사인디자인을 통해 잠시나마 뉴욕의 거리를 직접 걷고 있는 기분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 보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기획하게 되었다. (약 10컷 정도는 뉴욕 이외의 지역에 있는 간판을 촬영한 것이다)
거리를 걷다가 독특한 아이디어가 포함되어 있는 사인 디자인 만나는 것은 디자인을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너무나 즐거운 일이다. 진짜 아이처럼 서있는 마네킹 인형에 속아서 아이의 얼굴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 실수는 어떤 사람에게도 웃음을 만들어내는 가게 주인의 위트라고 생각한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관심을 끌 수 있고, 그곳을 기억하게 만드는 사인들이라면 이미 절반은 그들의 의무를 다한 것이 아닐까 한다.
한글이 배우고 익히기 쉬운 언어라는 것은 세계언어학자들도 인정한다는 것을 어떤 글에서 읽은 바가 있다. 한글은 우리가 정말로 자랑스러워 해도 될만한 우리의 문화유산이자 또한 세계의 문화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글이 디자인화 시키기에 가장 좋은 형태의 글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즘에는 영화포스터나 제품명에서 붓글씨 등으로 멋스럽게 쓰여진 한글을 많이 볼 수 있지만, 영어가 스펠링 하나씩으로 구성되어 글자 나름대로의 멋을 부릴 수 있는 것을 보면서, 그 언어 나름의 형태가 가진 독특성이 그 나라의 폰트 디자인에도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생각해본다. 폰트 디자인이 강조된 형태의 사인들을 ‘폰트 디자인이 강조된 형태의 사인들1에서 4’라고 이미지들을 정리하여 보았다. 멋스럽게 쓰여지고 구성된 길거리 알파벳 아트를 즐겨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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